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 [일반]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 이야기

현명한 영양제 고뇌

[일반]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 이야기

위즈덤현 2022. 2. 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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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5월.
1년에 한번씩 받는 특수건강검진 중 혈액수치가 심히 낮아서
바로 담당의사와 상담을 하는데 급성 백혈병이 의심된다네.
부정했다...ㅋㅋ돼도 안 한 핑계를 대며.

"아~요즘 3교대 근무하면서 생활패턴도 좀 무너지고
운동도 안하고 음식도 아무거나 막 먹고 해서 그런거 같은데
며칠 뒤에 다시 와서 검사하면 안됩니까?"

의사왈, 정색하며 절대 안 된단다. 절대.
지금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라고...보통 성인 남성의 혈소판 수치가
15만~40만인데 10만 이하면 혈소판 감소증에 기타 질병 의심,
5만 이하면 때에 따라 수혈을 해야하고 쉽게 멍이 들며
2만 이하면 아무런 외상 없이도 갑자기 뇌출혈이나 장기출혈로
사망할 수 있단다. 근데 내가 12000이라네...
(사진 속 수치는 수혈 받고 며칠 지나 다시 파괴된 후)
뿐만 아니라 백혈구의 수치도 낮기 때문에
감염의 위험이 굉장히 높아 감기만 걸려도 응급실로 직행해야 한다.

소견서 써줄 테니 당장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가는 길에 손발이 떨리고 멍해지더라...
여친과 웃으면서 장난치며 검사받고 있다가 날벼락 맞았지.
대학병원에 가서 입원후 골수검사 결과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았다.


검색하면 상세히 나오지만 100만명 당 2~5명 정도 걸리고
아직은 현대의학으로 원인을 알 수가 없는 희귀 난치성 질병이다.
가족 내력도 없고 원인이 될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었지...그래도 한끗 차이긴 하지만 다행히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고 혈액암(백혈병)은 아니더라.

바로 혈소판 수혈을 받았고 이틀을 입원했다.
사실상 교수는 계속 입원해야 된다고 했으나...
내가 바늘을 굉장히 싫어한다. 채혈이나 특히 몇 시간 동안
링거 맞는거 등등...극도로 싫어함. 도저히 매일 라인을 잡고
입원해 있을 자신이 없더라.

그리고 내가 혈액내과 암병동에 입원했는데
그 분들에겐 죄송한 마음이지만,
죄다 머리를 밀고 하얀 우유같은 항암제를 하루종일 맞고
그걸 다 맞고 나면 또 수혈을 하고, 또 다른걸 맞고...
이걸 수개월~1년 넘게도 하는데 솔직히 그냥 내 마인드로는
이럴 바에 난 밖에 나가서 내 방식대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겠다.
이런 생각이 훨씬 크게 들었다.(물론 무모한 생각이긴 함)

그렇게 어거지로 퇴원을 하고...퇴원직전 수혈로 인해
6만까지 혈소판이 올랐으나  며칠 후 피검사 결과,
1만대로 다시 떨어짐...ㅋㅋ조혈모세포가 비정상적이니
혈액세포(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을 정상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 아니길 바랐는데...수치를 유지하길 바랐는데
나도 여느 환자들처럼 수치가 떨어지는구나.
크게 3가지 방법이 있다.

1. 골수 이식을 받는다.
  -완치율90% 이상인 가장 확실한 방법이나, 말처럼 쉽지 않고
   굉장히 힘듦. 일치하는 공여자 찾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항암을 하면 정자의 대부분이 죽는다고 한다...
2. 면역억제치료를 한다.
  -완치율 50%...도박이나 이것도 항암과정을 거쳐야 함.
3. 면역억제 약을 처방 받는다.
  -약만 먹으면 돼서 제일 고통과 거리가 멀고 편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약만 먹고 완치한 경우는 거의 없음.

난 2세 계획도 중요했기에 항암은 솔직히 꺼려지더라ㅎㅎ
결혼까지 생각하는 여자친구도 옆에 있기에...
그러던 와중 담당의가 말을 꺼냈다.

"성인이고 하니 말하는건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길어야 1년입니다. 마냥 치료 거부하지 마시고 결단을 내려라"

이제 막 합격해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결심한
여친을 만난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시한부를 1년 때려버리더라.
그 말을 들으며 무심코 창밖을 봤는데 날이 너무 좋더라.
따사로운 햇살에 푸르른 나무가 살랑살랑 흔들거리고
포송포송한 구름 몇 점까지 너무나 완벽한 날.
그런 최고의 날 나는 최악의 선고를 받았다.
이상하게 시한부 판정을 받을 때 눈물은 나지 않더라.

번외지만 겁주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대학병원 교수가 굳이 환자를 겁준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검색해보니 정말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반수 이상이
감염 또는 출혈로 보통 1년 내에 사망하더라.

그건 그렇고 날 버려도 군말 없이 받아들일 준비도 돼 있었지만
여친은 날 버리지 않았다. 같이 이겨내보자고 한다.
나도 이 병만 아니면 솔직히 여러모로 못난 놈은 아니지만,
여자친구 또한 나보다 잘나서 얼마든지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는데도 이런 앞날이 깜깜한, 나조차도 미래를
알 수 없는 1년의 인생도 불확실한 나를 업고 간단다.

사실상 의욕이 크게 없었던 터인데, 그런 여자친구를 보자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이를 아득바득 갈게 되더라.
부산을 벗어나 서울의 모 병원으로 전원을 했고,
거기서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매주 수혈에 수치는 점점 떨어지고 피폐해지는 스스로를
억지로 버텨가는 중이었다. 근육빵빵에 우월한 체력은 아니지만
방화복에 공기호흡기까지 메고 기타 등등 이런저런 훈련을 받으며
나름 일반인보단 나은 체력을 지녔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젠 계단 몇 개 올라가는 것도 숨이 차오른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몸 곳곳에 멍이 들어있다.
나름 피부도 좋았는데 얼굴 혈색이 썩어들어가
누가 봐도 몸에 문제가 있고 아픈 놈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서서히 차츰차츰 죽어가고 있다.

아주 가끔 혼자 자려고 누웠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멘탈을 부여잡았다. 그래도 꽤나 풍파를 거치며 커왔기에,
그리고 내 옆엔 소중한 사람과 좋은 친구들이 있기에.

여튼 2달간 병가를 쓴 후, 나는 다시 직장을 다니며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욜로의 정신으로 살며
약을 잘 챙겨 먹은 결과, 매주 가던 서울이 2주, 1달, 2달이
되더니 떨어지거나 정체만 하던 수치들이 갑자기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이 기쁘다...
물론 수치가 다시 내려갈 수도 있고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아니 살아나야만 한다 이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도착점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게
스멀스멀 느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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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참고로 큰 병을 앓거나 중대한 수술을 앞두었으면
지방을 벗어나 무조건 서울로 가는 걸 추천한다.
솔직히 차이가 크더라...

먹고 있는 영양제
-B컴플
-미네랄 복합제
-비C, 비D
-마쿨라(루테인/제아잔틴/아스타잔틴)
-프로폴리스
-밀크씨슬(실리마린)
-비K 복합제

다들 건강 지키자. 건강이 최고다 진심으로!

ㅊㅊ-영갤/파드리노